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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선물용 와인, '보르도 와인'은 사지 마세요

by 쇼리쇼리이쇼리 2021. 9. 17.

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흔히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산지라고 하면 프랑스의 보르도를 꼽는 분이 많습니다. 최고가의 와인부터 저가의 벌크와인까지 정말 다양한 와인이 이 곳에서 만들어집니다. 보르도 특유의 지형과 기후는 이 산지를 전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습니다.

 

1. 그런데 이건 프리미엄 와인 이야기

하지만 보르도 와인이 최고라는 설명은 중급 내지는 하이엔드급 와인에서나 맞는 말입니다. 보르도 와인이 최고의 와인 산지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보르도라는 이름의 후광 덕분에 정말로 형편없는 와인들이 덕을 보는 것도 사실입니다. 

 

선물용 와인으로 보르도 와인을 사지 말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추석 선물용이라면서 여러 수입사들이 세트 상품으로 내놓고 있는 와인들 거의 대부분은 이른바 '묻지마 보르도' 와인입니다. 

 

2. 묻지마 보르도 와인이란?

한 마디로 보르도 지역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맞지만, 퀄리티를 전혀 보장할 수 없는, 듣도보도 못한 와인, 듣보잡 와인을 말합니다. 보통 많은 수입사에서 이런 묻지마 보르도 와인을 재고로 쌓아두고 있다가 설날이나 추석 명절 기간에 이른바 '프랑스 와인 세트'라는 이름으로 판매에 나섭니다.

이런 와인에는 대부분 거창한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풍부한 과일향이나 구조감이 좋다 내지는 와인의 종주국 프랑스의 명산지 보르도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이다 이런 식의 설명입니다.

 

보르도에서는 연 생산되는 와인의 병수만 해도 1억 병이 넘습니다. 이 1억 병 중에는 샤토 무통 로쉴드와 같은 1급 와인도 있고, 전에 소개드린 샤토 딸보와 같은 4급 와인도 있습니다. 이런 크뤼 클라쎄에 들어가는 와인들은 대체로 오랜 세월에 걸쳐 그 품질이 어느 정도 입증된 제품들입니다.

 

하지만 1억 병 중에는 조악하기 그지없는 와인이 태반입니다. 보르도의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엉망으로 관리된 포도밭에서 대충 수확해서 만든 와인에도 '보르도'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이런 와인들이 추석 명절 세트에 '명품 와인'으로 둔갑해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입니다.

 

3.소비자의 정보비대칭을 이용한 악성 판매술

대체 이런 와인을 어떤 경로로 구입하게 됐는지는 사실 안봐도 뻔합니다.

 

1) 추석 선물로 와인이 잘 나간다니까 백화점 와인 코너에 두리번 거린다

 

2) 직원이 와서 '와인을 추천해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3) 괜찮은 와인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하고 되묻는다

 

4) 미리 찍어놓은 '묻지마 보르도'를 추천한다

 

5) "보르도 와인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데 추석이라서 싸게 세트 상품으로 나왔다"는 양념을 친다

 

6) 혹한 소비자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다

 

7) 지인에게 '유명한 와인이야' 하고 선물로 건넨다

 

8) 같이 마셔보고 형편없는 맛에 질려하며 '와인은 허세야'하고 화를 낸다

 

무려 20년이 넘게 반복되어 온 뻔한 레파토리입니다. 그리고 올해도 변치 않고 계속됩니다. 제가 얼마전 모 백화점의 와인 코너를 두리번대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똑같은 레파토리로 가는 모습을 보고 기함했습니다. 예상대로 2병 묶음들이 보르도 와인이었고, 저는 그냥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4.그냥 명절기간엔 보르도 와인은 피하자

사실 보르도 와인 중에서는 당연하게도 엄청나게 훌륭한 제품이 차고 넘칩니다. 잘 만든 보르도 와인의 파워와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와인들은 역시 당연하게도 '매우 비쌉니다'. 와인을 전혀 모르는 상대가 마시고도 '맛있다'라고 느껴질 정도의 보르도 와인이라면 적어도 병당 10만원을 줘야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사실 와인을 전혀 모르는 상대에게 보르도 와인은 대체로 맞지도 않는 편입니다. 장기숙성형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르도 와인의 옥석을 굳이 일일이 가려가면서 명절 와인 선물을 고를 바에는 그냥 보르도 와인을 건너뛰는 게 사실상 더 낫습니다. 옥석을 가릴 시간이 오히려 더 아깝기 때문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추석 와인 선물세트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잘 모를 때는 그냥 누구나 아는 와인을 고르는 편이 실패 확률이 낮습니다.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보르도의 샤토 블라블라를 고를 바에는 깔끔하게 몬테스알파나 1865, 모엣샹동, 뵈브클리코와 같은 매우 대중적이고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품질에 있어서도 검증이 모두 끝난 와인을 선물하는 편이 낫다는 겁니다.

 

선물이란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만족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보르도 와인이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말에 속아 애써 잘 알지도 못하는 와인을 백화점에서 사서 선물했는데 정작 이를 마신 상대방이 너무 맛없어한다면 이런 선물은 하나마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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