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이번에도 와인 1865 관련 포스팅입니다. 워낙 많이 팔리는 와인이다보니, 이런저런 할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1.마트에 있던 1865와인, 자세히 보니...
홈플러스 등 대형 마트 와인 코너에 가 보시면 숫자 네개가 큼직하게 써진 와인이 박스 째로 진열된 모습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와인을 잘 모르는 분들은 누가 봐도 1865와 혼동할 여지가 아주 큽니다. 게다가 생산 국가 역시 칠레니 무심코 집으시는 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와인은 1865 와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와인입니다. 바로 1887 이라는 이름이 붙은 와인입니다.
2.1865를 대놓고 베낀 이름인가
1865의 국내 누적 판매량은 무려 400만 병이 넘습니다. 와인을 만드는 칠레 산 페드로 입장에서는 한국이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산 페드로는 국내 판매량 덕분에 무럭무럭 회사의 규모를 키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트에서 1887이라는 와인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병 라벨에 큼지막하게 1887이라고 적혀 있는데다, 라벨의 색상, 병의 색상 모두 1865를 겨냥해서 만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와인입니다. 게다가 이 와인은 마트에서 1887 리제르바는 9900원, 1887 그랑 리제르바는 14,900원에 팔고 있습니다. 와인을 잘 모르는 분 입장에선 '1865가 단돈 만원 대에 팔고 있네' 하고 현혹될 만한 상황입니다.
3.정체불명의 벌크 와인
이 와인의 수입사는 롯데주류입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칠레 최적의 떼루아인 샌트럴 밸리에서 생산된 카베르네 쇼비뇽 와인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친숙한 제품', '양조에 사용된 포도 나무는 25년 된 칠레 센트럴 벨리의 대표 포도 나무로서, 수확 후에는 3개월간의 오크 숙성을 거쳤다'고 나와 있습니다.
사실 이런 설명은 큰 의미 없습니다. 칠레 센트럴 밸리는 이른바 '묻지마 칠레'가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산지입니다. 그냥 대량으로 찍어서 만드는 벌크 와인의 고향과도 같은 산지라는 뜻입니다. 라벨에 '센트럴 밸리'라고 적혀 있으면 100%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낮은 수준의 와인이겠구나' 하고 의심을 하는 쪽이 마음 편합니다.
그렇다고 이게 해외에서 판매되는 와인도 아닙니다. 와인서쳐 등을 찾아보면 1887이라는 와인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887은 '한국 전용' 와인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풀어보자면, 이른바 OEM 와인으로 봐야 합니다.
OEM 와인은 말 그대로 주문형 와인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이런저런 스타일로 와인을 만들어주세요하고 주문을 넣으면 생산자 쪽에서는 주문사항 그대로 와인을 만들어줍니다. OEM 와인 자체가 꼭 나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대체로 클라이언트는 저렴한 가격에 무난하고 이지드링킹한 맛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생산자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즉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주문을 맞춘 와인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1887 와인을 만든 곳은 '비냐 마올라'(Vina Maola)라는 와이너리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 들어보는 와이너리인데 포스팅을 하면서 들어가보게 됐습니다. 첫 페이지만 봐도 눈치 빠른 분들은 감을 잡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자체 브랜드를 단 와인도 만들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OEM 와인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곳입니다. 'We specilaize in crafting customized solutions for our clients wine need', 즉 클라이언트의 와인 요청사항에 맞는 커스텀화된 와인 양조에 특화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홈페이지 처음부터 이런 설명을 하는 곳이니 OEM 와인은 명확해 보입니다.
4.심각하게 낮은 퀄리티
이름 베낀 와인이면 어때 싶으실 수도 있지만, 와인의 품질도 심각하게 낮습니다. 미디엄 바디라지만 바디감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풍부한 풍미는 찾아볼 수 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희한하게 오크를 쓴건 맞아 보이는데, 향이 매우 조악하고 잔에 따라 놓으면 그 향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크 칩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 아닌가 강력한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달큰한 향이 올라오는데,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하나 첨언하자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블로그에서 1887 와인을 리뷰한 포스팅을 아마 보셨을 겁니다. 포스팅은 개인의 자유고 사람마다 입맛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실과는 매우 다른 내용의 포스팅이라는 점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이 와인의 퀄리티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1887 와인 추천합니다' 이런 포스팅을 만약 보신다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블로거의 와인 레벨이 형편없거나, 협찬을 받았거나 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이 와인이 수상을 했습니다. 거기 심사위원들은 굉장히 와인 레벨이 높으신 분들인데, 대체 왜 이런 와인이 수상을 하게 된 것인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심사 결과와 무관하게 처음부터 회사별로 나눠서 상을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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