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와인이라는 술이 갖는 매력 그 자체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꼭 와인을 마실 필요가 없다고 설명드렸고, 그럼에도 마실 필요가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와인 자체가 갖는 사회적인 의미에 좀 집중을 해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와인을 알고 싶어하고, 또 마시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 와인은 사회적인 음료입니다
사실 모든 술은 '사교'의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혼술'이라는 독특한 트렌드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고 보다 솔직한 내면의 마음을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소주,위스키,맥주 등 수많은 술이 존재하는데도 왜 하필 와인이냐고 묻는다면 '과음하지 않는 술'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와인 모임에 나가보면 기본적으로는 '음주 행위' 자체는 다른 사교 모임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과음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와인의 가격이 기본적으로 있어서 무한정 마시기 어려운데다, 분위기 자체가 '흥청망청'으로 흐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취한다'보다는 서로 간의 대화에 보다 집중하게 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다들 많은 술자리에서 경험하셨겠지만, 처음에는 뭔가 이런저런 진지한 대화가 오가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모두 만취해서 지나고보면 아무런 의미를 둘 수 없는 그런 자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마시는 행위보다 '대화'에 보다 집중하게 되면 그 자리가 굉장히 의미있는 자리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2.사회적 중상위 계층이 마시는 술입니다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실 수 있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수많은 대기업, 로펌 등에서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전문 와인강사를 회사로 불러서 테이블매너나 기초 와인 상식을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회적인 권력을 쥔 사회적 중상위 계층들이 와인을 즐겨 마시고, 따라서 이들을 클라이언트 내지는 고객으로 삼는 기업이나 로펌은 당연히 이들의 기호에 맞추려는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내가 와인에 관심이 있든 없는 관계없이 내 고객이 와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싫어도 와인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와인은 기호품이기 때문에 내가 싫으면 마시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와인을 좋아하는 중요 고객 앞에서 '최소한의 와인 상식'조차 없다면, 과연 제대로 된 영업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라면 '싫어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할 술'이 바로 와인입니다.
3. 와인은 유구한 전통을 지닌 국제적인 술입니다
와인은 대략 만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술로 추정됩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술에 취한 노아를 부끄러워 한 세 아들이 옷을 덮어주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당시 노아가 마시고 취했던 술이 바로 '와인'입니다. 구약의 역사만큼 와인의 역사도 오래된 셈입니다.
또한 크리스트교에서 와인은 예수의 피를 상징합니다.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꿨다는 묘사, 기억하실 겁니다. 그만큼 와인은 서양 역사와 문화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서양 문화의 근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와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인, 특히 유럽인에게 와인은 곧 문화와도 같습니다. 이쪽 계통의 사람들과 거래가 잦은 분 치고 와인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분은 없습니다. 와인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특히 비즈니스적인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와인의 위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바로 '정상회담'입니다. 왜 국가 정상간의 회담에서는 소주나 위스키, 맥주가 등장하지 않을까요.
위의 사진은 각국 정상회담 자리에서 등장한 술입니다. 종종 다른 술이 등장할 때도 있지만, 건배 제의 상황에서는 반드시 와인이 나오게 됩니다. 와인이 다른 술보다 우월해서는 아닙니다. 술은 기호품이고, 굳이 우월을 따질 이유도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냥 와인이 나오는 게 당연해서'입니다. 와인이라는 술이 갖고 있는 역사성, 서구문화에서의 위상, 각 와인마다 부여되여 있는 여러 스토리텔링 등을 고려했을 때, 정상회담에서는 다른 주종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4.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프랑스 방문
2004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빈 자격으로 프랑스를 방문합니다. 당시 프랑스는 '최고의 손님에게 최고의 만찬을 대접한다'는 컨셉을 잡았습니다. 만찬 자리에는 와인, 그것도 어김없이 최고 수준의 와인이 준비됐습니다.
샤토 디켐 1990년산
샤토 무통 로쉴드 1988년산
동 페리뇽 1995년산
최고의 빈티지에 최고 수준의 와인입니다. 당시 준비된 와인 관련 예산만 3병을 80세트 준비하느라 2억 5천만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건 사치가 아닙니다. 프랑스는 최고의 손님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갖췄던 것입니다.
5. 와인 꼭 마실 필요는 없지만
거듭 말씀드리지만 와인은 기호품입니다. 본인이 내키지 않으면 마시지 않아도 됩니다. 마시지 않는다고 딱히 큰 손해를 보거나 하는 것도 없습니다. 아니면 그만인 셈입니다. 그러나 독주를 점점 멀리하는 트렌드, 국제적인 술이라는 점, 건강에 좋다는 점, 품격과 격식을 갖춘 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히 장점이 많은 술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와인 소비 문화에는 거품이 많이 껴있고, 여전히 '와인은 허세야'하는 생각을 갖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정 부분 저도 동의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생 백반집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가끔 최고급 한정식도 먹어봐서 '일류의 맛'을 느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술로서 '최고의 맛'을 미처 모른채 오직 '소주만이 최고야', '맥주가 답이지'라고 부르짖는다면 그건 맞는 생각일까요. '이제 백반집 밥은 지겹다' 하는 분이라면 언제든지 와인의 길로 오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술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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