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와인 전면에 붙어 있는 라벨은 정말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라벨에 담아야할 정보를 법으로 규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벨을 읽는다는 건 곧 그 와인의 핵심 정보를 이해한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오늘은 와인을 사면 대부분 적혀 있는 것중 하나인 '연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와인 라벨의 연도가 의미하는 것은?
와인 라벨에 적힌 연도를 '빈티지'라고 합니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한 포도를 수확한 해입니다. 이렇게 정의를 '사용한 포도를 수확한 해'라고 정확히 특정하는 이유는 포도를 수확한 해와 와인을 양조한 해, 그리고 최종 와인을 병입한 해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샤토 이쇼리'라는 이름의 와인을 만드는데 쓸 포도를 2020년 가을에 수확했지만, 양조는 2020년 겨울에 한 뒤 오크통에서 오랫동안 숙성했을 수가 있습니다. 2년을 오크통에서 숙성한 뒤에 병에 담았다면 22년 겨울에 이 와인은 출시될 것입니다. 실제로 소비자가 '샤토 이쇼리'라는 이름의 와인을 만나는 시점은 2022년 겨울 내지는 2023년이 될 것입니다.
나라에 따라 이 숙성 기간을 법으로 길게 정해놓은 곳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스페인입니다. 스페인의 '그랑 레제르바' 등급의 경우, 총 숙성기간이 60개월 즉 5년에 달합니다. 2015년 빈티지의 스페인 그랑 레제르바 와인은 아무리 빨라도 2020년에야 만나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굿빈'이라고 부르는 개념도 있는데, 이는 굿 빈티지를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콩글리시같습니다만...) 포도를 수확한 해의 작황이 워낙 뛰어나서 다른 해보다 월등한 수준의 와인이 만들어지는 해를 의미합니다. 작황이 매우 좋다면 와인이 출시되기도 전에 선물거래 시장에서 와인이 비싼 값에 팔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와인 애호가들 중에서는 기념일이나 자녀가 태어난 해를 기념하는 '생일 빈티지'를 사들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역시도 만약 아이가 2018년도에 태어났다면 정작 와인을 구할 수 있는 해는 2020년 이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생일 빈티지로 쓸만큼의 의미가 있는 와인이라면 숙성 잠재력이 커서 와이너리 내에서 묵히는 기간이 제법 길기 때문입니다.
2. 남반구와 북반구의 차이
그런데 지구는 둥글고 남반구와 북반구의 계절이 시작하는 시기가 정 반대입니다. 한국이 겨울이면 뉴질랜드는 여름인 것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따라서 북반구인 프랑스에선 4월부터 10월까지가 포도의 생장주기인 반면, 뉴질랜드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생장주기입니다. 남반구 쪽의 빈티지가 북반구보다 한 해 정도 느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3. 논-빈티지 와인이란?
그런데 와인 중에서는 라벨에 빈티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와인도 존재합니다. 이런 와인을 통틀어서 논 빈티지 와인이라고는 합니다. 그런데 논 빈티지 와인이 나오는 이유도 워낙 다채롭고 다양해서 콕 하나를 찝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초저가 벌크 와인 중에서 논 빈티지 와인이 많습니다. 재고로 잔뜩 쌓여서 오래 묵혀놓은 전년도 포도즙 등을 뒤섞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고급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인 샴페인 중에서도 논 빈티지 와인이 많은데 이유가 정 반대입니다. 샴페인을 만드는 '샴페인 하우스'의 저력은 '얼마나 많은 리저브 와인'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래 보관한 리저브 샴페인을 섞어서 샴페인에 풍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보관해둔 와인을 섞기 때문에 빈티지 표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비슷한 이유로 주정강화 와인의 대명사 중 하나인 쉐리 역시 논 빈티지 와인이 대부분입니다. 쉐리같은 경우는 솔레라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와인을 섞기 때문에 역시 빈티지를 표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여러해를 섞는 이유는 딱 한 가지가 아닙니다. 남아도는 포도를 써먹기 위해서일수도 있지만, 와인 품질의 균일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매년마다 와인의 품질이 들쑥날쑥하다면 와이너리의 실력 자체를 의심받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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