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전에 추석 선물세트로 '보르도 와인 세트'는 절대 사면 안 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르도라는 와인 산지는 세계 최고급 와인이 나오는 곳인 만큼, 와인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마셔보고 싶으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1.좋은 보르도 와인 라벨에는 '보르도'가 적혀 있지 않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부터 드릴 말씀은 '일반론'일 뿐, 모든 와인에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보통 보르도의 탑클래스급 와인은 이른바 1~5급까지, 1855년에 만들어진 체계에 들어 있는 와인들을 꼽곤 합니다. 물론 1~5급 와인들이 전부 품질이 뛰어나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대체로 뛰어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와인의 라벨을 잘 보시면 절대 전면에 '보르도'(Bordeaux)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와인은 이른바 '5대 사토' 중 하나인 샤토 마고의 라벨인데, 라벨 어디에도 보르도라는 글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라벨 중간에 보시면 '마고(Magaux)'라고만 적혀 있을 뿐입니다.
다른 라벨을 하나 더 보시겠습니다. 이건 보르도 1~5급 와인 중 3급 와인인 '샤토 팔머'의 세컨드 라벨인 '알터 에고'라는 와인입니다. 세컨드 와인인데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 제품이기도 합니다. 역시 이 라벨을 살펴 보시면 제일 큰 쪽에는 '보르도'란 말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라벨 제일 아래 조그마하게 마고-보르도-프랑스라고 적혀 있을 뿐입니다.
2. 좋은 보르도 와인에 '보르도'가 없는 이유
간단합니다. 프랑스 와인 체계는 일종의 '피라미드'입니다. 라벨에 적힌 지역단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별로인 와인인 경우가 많고, 반대로 지역단위가 좁을수록 좋은 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일반론입니다)
그런데 보르도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을 살펴보면, 보르도 < 메독(보르도 우안의 특정 지역) < 마고(보르도 우안의 특정 마을) 와 같은 순으로 지역이 좁혀집니다. 보르도가 가장 넓은 단위고, 마고가 가장 좁은 단위인 셈입니다.
가장 넓은 단위인 '보르도'라고 적혀 있다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보르도 어딘가에서 난 포도를 갖고 만들었단 뜻이고, 가장 좁은 단위인 '마고'나 '생테스테프'와 같은 마을 이름이 적혔다면, 해당 마을에서 기른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단 뜻입니다.
당연히 '보르도'라고 적힌 와인이 별로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3.'보르도'라고 적힌 와인을 사면 안되는 이유
여기부터 오늘의 본론입니다. 제가 아는 와인 중에선 '보르도'라고 적힌 와인이면서도 꽤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와인도 많습니다. 독특한 블렌딩을 한 와인인지라 어쩔 수 없이 '보르도' 타이틀을 달고 출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마트같은 곳에서 만나게 되는 '보르도'라고 적힌 와인들 거의 대부분은 벌크 와인, 즉 대량생산된 조악한 와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인터넷에 찾아봐도 정체조차 알 수 없는 '묻지마 보르도' 와인인 것입니다.
이런 와인들은 거의 떨이로 헐값에 수입되는 것들인데, 생산된 지역만 보르도일 뿐,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여운도 줄 수 없는 싸구려 와인들입니다. 보통 '보르도 와인 마시고 실망했다'는 분들의 거의 대부분은 이런 '조악한 벌크 와인'을 드신 경우입니다.
추석 선물세트로 풀리는 보르도 와인들이 거의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저도 오래 전에 우연히 이런 싸구려 보르도를 마셔본 기억이 있는데, 너무 강렬했습니다. 나쁜 의미로 강렬했는데, 와인의 한복판이 텅 빈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줬습니다. 바디감은 흐물흐물했고, 탄닌만 두드러졌으며, 과일의 풍미라곤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와인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와인을 잘 모른다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냥 '보르도'라고 적힌 와인을 피하는 편이 나은 것입니다.
보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대로 된 보르도 와인은 최소 5~10만원 정도의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지역 프리미엄까지 있기 때문에 대체로 값이 센 편입니다.
'보르도가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 라는 말에 현혹돼 형편없는 수준의 '묻지마 보르도'를 구입할 바에는 훨씬 저렴하면서도 제대로 만든 칠레나 호주의 신대륙 와인을 구입하는 게 보다 현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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