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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눈물'에서는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나요

by 쇼리쇼리이쇼리 2021. 11. 17.

와인 용어 중에서 '와인의 눈물'이란 것이 있습니다. 와인잔의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기에 따라선 굉장히 신비롭기도 한데, 사실 이런 시각적인 효과 외에도 와인의 눈물에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와인의 눈물은 점도와 관련 있습니다

먼저 꿀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꿀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거꾸로 세워보시면 용기 벽면을 타고 꿀이 아주 천천히 흘러내린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꿀의 점도가 높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 더 끈적끈적한 용액일 수록 더 천천히 흘러내린다는 뜻입니다.

이걸 와인에 넣어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떤 와인은 벽을 타고 내려오는 걸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점도가 낮은 반면, 다른 와인은 굉장히 점도가 높아서 정말 천천히 벽을 타고 내려오기도 합니다. 이는 1855년 카를로 마랑고니가 발견한 '마랑고니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보통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기화작용이 매우 활발하게 이뤄지게 됩니다. 이러면 와인의 눈물의 굵기가 점점 더 굵어집니다. 그래서 와인의 눈물만 제대로 관찰해도 이 와인의 알코올 도수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이 와인의 눈물 굵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에테르 유기화합물과 글리세롤 등도 존재합니다만, 압도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점도가 높은 와인은 풀바디 와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WSET 과정을 듣다보면 느껴지는 알코올의 도수를 적어내는 테이스팅 항목이 있습니다. 알코올이 높다, 중간이다, 낮다를 적어냅니다. 또한 와인의 바디감이 중간인지, 높은지, 낮은지를 적어내는 항목도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름 답 적어내는 꿀팁이라면 알코올 도수와 바디감은 똑같이 적어내면 거의 정답입니다.

이는 앞서 말한대로 점도가 높은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점도가 높은 와인은 대개 풍성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강하고, 따라서 풀바디 와인일 가능성이 극도로 높습니다. 즉, 알코올 도수 = 바디감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해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굉장히 유용합니다. 와인의 눈물이 천천히 내려오는 와인이면 풀바디 와인일 확률이 극도로 높고, 알코올 역시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눈으로 관찰한 색상까지 조합해서 생각해보면 와인의 생산 지역을 좁혀나갈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와인의 눈물의 굵기가 굉장히 두껍고 천천히 내려오는데, 색상은 짙은 보랏빛을 나타낸다면 미국이나 호주의 카베르네 소비뇽 또는 쉬라즈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꼭 이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피노 누아'는 아니라는 단서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와인은 '알코올'이 아닙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와인의 눈물 자체는 알코올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한 마랑고니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와인은 알코올과 물이 섞여 있는 용액입니다. 와인잔을 스월링하게 되면 일단 와인 용액이 잔 전체에 얇은 막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알코올은 기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기화는 주로 와인잔의 윗부분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기화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에선 당연히 물이 가장 많습니다. 이 물이 표면장력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표면장력이 낮은 아랫쪽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이때 역시 표면장력의 영향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서로 뭉쳐서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과학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데 와인의 눈물의 원리가 이렇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냥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관점이 개인적으로는 옳다고 봅니다. 저런 부분이야 화학자나 업계에서 신경쓸 부분이지,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 알 필요가 1도 없는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천천히, 그리고 신비롭게 아래를 향하는 와인의 눈물을 '아름답다'는 시선으로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와인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음료가 아닙니다. 오각을 모두 동원해서 재미를 추구하는 흥미로운 술입니다. 그리고 이런 오각에는 당연히 시각이 포함되며, 이 시각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측면 중 하나가 바로 와인의 눈물이라는 게 제 생각합니다.

 

누구는 이런 말도 합니다. 와인의 눈물이란 그냥 알코올이 아니라 와인의 영혼이 모여 흘러내리는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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