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와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라벨에 '샤토(chateau)'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걸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뜻이 뭐냐고 물어보면 모르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1.'샤토'의 의미는 '성'
샤토의 원래 의미는 프랑스어로 '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라벨에 '성'이 그려진 것들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와인과 관련해서는 '양조장' 내지는 '와이너리'와 같은 의미와 동일하게 쓰입니다. 예를 들어 스위트 와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샤토 디켐'을 보면, 굳이 억지로 뜻을 풀어보자면 '디켐이라는 이름을 가진 와이너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사실 이런 이름이 붙게된데는 여러가지 기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중세 프랑스에서 와인을 만들던 곳은 수도원과 함께 귀족들의 영지였습니다. 당연히 귀족들의 영지인 만큼, 성도 존재했습니다. 프랑스대혁명 이후에는 이런 성들이 대체로 신흥 계층인 부르주아 손에 넘어갑니다. 귀족들을 엎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과거의 귀족들을 닮고 싶었던 역설적인 마음을 가진 이들은 귀족의 성을 중심으로 그들의 문화였던 와인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2. 자체조달한 포도를 갖고 와인을 만드는 곳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샤토라는 이름이 붙은 건 와인 생산의 전 과정을 해당 샤토, 즉 와이너리에서 진행했다는 의미도 어느 정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확실한 건 라벨에 'mis en bouteille au chateau'(미장 부떼이 오 샤토; 샤토에서 병입함)라는 표기가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만, 라벨에 샤토라는 이름만 들어 있어도 어느정도 동의어로 간주되는 편입니다.
여기서 전 과정을 진행했다는 뜻은 포도나 포도즙을 외부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해당 샤토에서 보유한 땅에서 조달했으며, 와인 생산 역시 해당 샤토 안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생산의 전 과정을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행했다는 겁니다.
3.샤토의 현대적 의미는 '와이너리'
다만 지금은 별다른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냥 영어로 '와이너리'라고 동일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각 나라마다 양조장을 의미하는 용어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스페인에서는 '보데가'라는 단어가 붙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카스텔로', '테누타', '까사', '비냐' 등의 단어가 '와이너리'와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물론 각 단어의 원 의미는 약간씩 다릅니다. 샤토가 '성'을 의미하듯, 비냐는 '포도밭'을 뜻하며, 카스텔로는 '성'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샤토는 '해당 양조장'에 붙는 명칭이란 겁니다. 무슨 뜻이냐면, 예를 들어 '샤토 이쇼리'라는 이름은 이런 이름을 가진 와이너리에 붙는 것이지, 밭에 붙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이름만 똑같이 '샤토 이쇼리'일 뿐, 장소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4.'샤토 와인 주세요'라는 말은 어색합니다
와인 관련 검색어를 살펴보면 의외로 '샤토 와인'을 검색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5대 샤토 이런 말도 있다보니 아무래도 '샤토 와인'이란 게 별도의 의미가 있는 와인인 줄 아시는 분들이 많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샤토 와인'이란 제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와인을 잘 아는 분이 들으면 '아 프랑스 와인 달라는 구나' 정도까지는 생각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별도의 '샤토 와인'이란 이름을 가진 제품은 없는 겁니다.
아마도 "샤토 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판매자는 여러분에게 더 이상 묻지 않고 보르도 지역의 와인을 추천할 겁니다. 굳이 '샤토 와인이란 건 없어요'라고 말해서 구매자인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하지만 "샤토 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어떤 나쁜 판매자는 당신을 호구로 생각해서 후려칠지도 모릅니다. 와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초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건 농수산물시장에 가서 "이천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만큼 어색합니다. 이천이 쌀의 명산지인건 다들 알기 때문에 그냥 대충 알아듣고 넘어가겠지만, 악질적인 판매자라면 당신에게 창고에 쌓아둔 '묵은 이천 쌀'을 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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