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해서 몇 번이나 돌려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정우성과 조인성 주연의 영화 '더킹'입니다. 대검 중앙수사부(영화 속에서는 전략기획부로 등장합니다)의 핵심 검사들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모습, 그리고 출세지향적 인간의 성공과 파멸을 그린, 꽤나 흥미로운 수작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자주 파티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사용된 와인을 알아봤습니다.
1.정우성과 조인성의 첫 만남이 이뤄진 펜트하우스 등장 와인
영화 초반, 지방 검사를 전전하던 조인성(박태수 역)은 선배 검사의 청탁을 해결해준 대가로 한 화려한 펜트하우스에 초청을 받습니다. 이 곳에서는 정치인, 검사, 기자 가릴 것 없이 유력 인사들이 한데 모여 여성들과 질펀한 파티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정우성(한강식 역)과의 첫 만남이 이뤄집니다. 늦게 도착한 정우성이 자리에 앉고, 그 자리에는 여러 종류의 술이 깔려 있습니다. 여기에 이 영화 첫번째 와인이 등장합니다. 먼저 이 사진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진만 갖고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만, 다음 장면에서 배성우(양동철 역) 검사가 한강식에게 아부를 하며 흔드는 와인을 보면 와인의 정체가 보다 명확합니다. 바로 페리에 주에 '벨 에포크'입니다.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인데, 아르누보 아티스트인 '에밀 갈레'의 꽃 작품이 병 겉에 새겨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벨 에포크는 오래 전부터 '고백용 와인'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연인이 같이 벨 에포크를 마신 뒤 여기에 준비한 꽃을 담아 프로포즈한다는 식입니다.
사실 펜트하우스 씬에서는 와인이 하나 더 등장합니다. 바로 '멈 꼬르동'이라는 샴페인인데, 앞서 살펴본 페리에 주에에 비해서는 등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여기서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 정우성이 마시던 레드 와인잔은 고증 오류
영화 속에서 정우성이 레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합니다. 제일 처음은 검찰의 수사 패턴을 설명하는 씬에서 정우성이 스테이크에 후추를 뿌리는 장면인데, 여기서 레드 와인을 담은 와인잔이 등장합니다.
스템이 검은 색으로 칠해진 이 와인잔은 바로 리델의 최상위 레인지 중 하나인 '블랙타이'입니다. 스템이 검은색으로 채워져 있어서 매우 독특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와인잔입니다.
이 블랙타이 와인잔은 영화 속에서 모두 두 차례 등장합니다. 첫 씬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검찰의 수사 패턴을 설명하는 초중반 장면입니다. 두 번째 씬인 영화 막판 자신에게 등을 돌린 조인성을 정우성이 회유하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블랙타이 와인잔이 등장합니다. 조인성과 정우성 모두 레드 와인을 블랙타이 와인잔에 담아서 마시는 모습을 영화 속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 속 한강식은 최고의 자리를 갈망하는 강한 욕구를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와인잔인 리델 블랙타이가 사용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두 장면 중 일부는 고증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 블랙타이 등장 씬은 1994년 배경인 펜트하우스씬과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 사이 시점에 등장합니다. 영화 속을 살펴보면 '한강식 부장 검사 쾌거'라는 제목의 신문 1면이 나타나는 장면 사이에 블랙타이 등장 씬이 배치돼 있습니다. 이 신문 날짜를 자세히 보면 1996년 9월 25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강식 부장이 블랙타이 와인잔을 사용한 시점은 1996년인 것입니다.
두 번째 블랙타이 등장씬은 2009년이 배경입니다. 조인성(박태수 검사)이 양심선언 기자회견을 경찰청 대강당에서 하게 되는데, 기자회견 현수막에 '2009년 11월 24일'이라고 명확하게 써 있습니다. 기자회견 뒤 곧바로 정우성이 조인성을 불러 회유에 들어가는 장면에서 블랙타이가 나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만나는 시점은 2009년 11월 말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리델 소믈리에 블랙타이가 최초 출시된 건 2008년입니다. 즉, 1996년 첫번째 씬에서는 사실 리델 블랙타이는 출시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반대로 2009년 11월에 등장하는 두 번째 등장씬은 출시시점을 감안했을 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블랙타이가 등장하는 두 장면 중 한 장면은 완전한 고증 오류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 갖는 축하 자리에도 샴페인으로 추정되는 와인 하나가 사용되긴 했는데, 아무리 제가 돌려봐도 이 와인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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