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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파뉴에는 그랑 크뤼란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by 쇼리쇼리이쇼리 2021. 11. 10.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도 당연히 프랑스 AOC 시스템 안에 들어 있는 곳입니다. AOC는 일종의 피라미드처럼 되어 있는 등급 체계입니다. 이 계층화가 가장 확실하게 되어 있는 곳이 바로 부르고뉴인데, 광역단위(AOC 부르고뉴) < 마을단위(AOC 샤샤뉴 몽라셰) < 프리미에르 크뤼(AOC 샤샤뉴 몽라셰 모르조 프리미에르 크뤼) < 그랑 크뤼(AOC 르 몽라셰)별로 철저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사실상 AOC가 1개 뿐인 샹파뉴

반면 샹파뉴 지역에는 AOC가 사실상 1개 밖에 없다고 봐도 됩니다. 바로 AOC Champagne 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샴페인은 AOC 샹파뉴의 이름을 달고 출시됩니다. 이 외에 자잘한 AOC가 2개 더 있지만 굳이 알 필요까지는 없는 것들입니다.

 

철저하게 계층화되어 있는 프랑스 와인 체계에서 왜 샹파뉴의 AOC는 사실상 1개 밖에 존재하지 않을까요? 이건 샴페인을 만드는 방식 때문입니다. 지금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소규모 샴페인 하우스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세는 대규모의 샴페인 하우스입니다. 지나가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루이 뢰더러', ' 뵈브 끌리코', '도츠' 이런 샴페인 하우스들은 규모의 경제를 몸소 실천하는 곳들입니다. 

 

이런 곳들은 물론 자사가 직접 운용하는 포도밭도 있지만, 대체로 샹파뉴 지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여러 포도 농가에서 포도를 사들입니다. 이 사들인 포도를 갖고 샴페인을 만듭니다. 그런데 그냥 만드는 게 아닙니다. 만든 샴페인을 자신만의 기준에 맞춰 뒤섞습니다.(블렌딩) 와인을 블렌딩하게 되면 개별 밭의 개성은 사실상 사라지고, 오히려 각 샴페인 하우스만의 독특한 블렌딩 개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따라서 개별 밭을 강조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라벨에 '그랑 크뤼' 적혀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요?

샴페인에도 그랑 크뤼란 게 존재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건 AOC 체계에서 정식으로 승인된 것은 아니며, 자체적인 지역의 분류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1911년, 샹파뉴 지역에서는 에셀 데 크뤼란 것이 탄생합니다. 와인 생산 마을과 밭에 등급을 부여한 것인데, 현존하는 그랑크뤼같은 개념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모든 마을과 포도밭은 80%~100%까지의 등급을 21단계에 걸쳐 받습니다. 이 중에서 17개의 그랑 크뤼, 42개의 프리미에르 크뤼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AOC에 포함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사실 이렇게 등급을 나눈 건 짐작하셨겠지만 돈 때문입니다. 20세기 초반에 많은 샴페인 하우스들의 전횡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샴페인 하우스들은 저렴한 가격에 포도를 사들인 뒤 매우 비싼 가격의 샴페인을 만들어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농가에서는 폭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입니다.

 

샹파뉴 폭동

1911년 샹파뉴 지역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납니다. 이 폭동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1907년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 지역에서 무려 석달동안 이어진 엄청난 규모의 폭동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와인 가격은 그야말로 '똥값'이란 말이 맞을 정도로 형편 없었습니다. 알제리산 와인에 이어 대규모의 '풍작'까지 벌어집니다. 풍작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닌 게, 생산량이 너무 늘어난다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 폭동 뒤 프랑스 정부는 여러 규제책을 내놓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샴페인의 생산지역을 제한한 일입니다. 앤과 마른지역에서 생산된 것만 샴페인으로 인정하는 규제였는데, 최남단의 '오브(Aube)'란 지역이 생산가능지역에서 빠지게 됩니다. 오브 지역에는 '트루와'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당시 샹파뉴의 주도 역할을 하는 곳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오브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흥미로운 건 트리거가 된 계기는 바로 정부의 규제였지만, 이러한 폭동의 뒷배경에는 포도농가의 상대적인 박탈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폭동 당시 다수의 대형 샴페인 하우스들이 폭도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도 샴페인 하우스의 전횡이 심해서 만들어진 게 바로 앞서 언급한 에셀 데 크뤼입니다. 포도밭과 마을에 붙은 '등급'은 샴페인의 품질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저 그레이드에 따라 샴페인하우스가 포도농가에 지급해야하는 돈도 달라졌습니다. 좋은 포도에는 정당한 비용을, 평범한 포도라도 헐값에 후려치지 못하도록 만든 게 바로 에셀 데 크뤼의 탄생 목적인 것입니다.

 

샹파뉴의 다른 AOC들

앞서 샹파뉴에는 다른 AOC가 존재하기는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AOC 로제 드 리쎄(Rose des Ricey) : 100% 스틸 로제와인을 만드는 AOC입니다. 꼬뜨 데 바의 오브 지구에서만 만들어지며, 피노누아 단일 품종으로만 만드는 로제와인입니다. 아주 충분히 익은 경우에만 생산하는 편이며, 샹파뉴 지역에서는 이 로제 드 리쎄를 '샹파뉴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매우 독특한 헤이즐넛 혹은 아몬드의 풍미가 느껴지는 로제입니다.

 

2) AOC 꼬또 샹프누아(Coteaux Champenois) : 거의 대부분은 스틸 화이트며, 소량의 스틸 레드, 일부 극소량의 스틸 로제도 있습니다. 로제 드 리쎄 AOC가 따로 있기 때문에 굳이 이걸로 스틸 로제를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AOC 전역의 포도로 만드는 스틸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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