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최고의 샴페인을 꼽으라면 1등이 누군지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최고로 유명한 샴페인을 꼽으라면 거의 만장일치로 답이 나옵니다. 바로 샴페인 '돔페리뇽'입니다.
1.돔페리뇽을 둘러싼 신화
사실 돔페리뇽을 둘러싼 신화와 같은 이야기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세계 최초의 샴페인이다, 샴페인을 처음 맛본 페리뇽 수사가 '별을 맛보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장님이던 페리뇽 수사는 후각과 미각이 탁월해 그 누구도 그의 블렌딩을 따라할 수 없었다 등 뭔가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위대하신 수령님이 축지법을 써서 적들을 제압했다는 과장 수준의 것들입니다.
2.최초의 발포성 와인은 돔페리뇽이 아니다
각 나라마다 이런저런 기록을 이유로 최초의 발포성 와인을 만든 곳이 자신의 나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프랑스에 한정해서 보면, 최초의 발포성 와인은 돔페리뇽이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문헌상으로는 프랑스 남부의 '리무'의 생틸레르 수도원이라는 곳에서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시기는 1531년이었는데, 페리뇽 수사가 활동하던 시기가 1600년대 말~1700년대 초였던 만큼, 샹파뉴 지역보다 약 150년 일찍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던 셈입니다.
3. 페리뇽 수사가 실제로 한 일들
물론 페리뇽 수사가 스파클링 와인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프랑스 오빌레르 수도원의 수사였던 페리뇽은 1668년 수도원 양조장의 책임자로 임명됐습니다. 당시엔 1차 발효가 불완전했던 터라 병 안에 당분과 효모가 남아 있었고, 추운 샹파뉴 지역의 겨울 동안 잠잠하다가 봄이 되면서 기온이 오르자 다시 발효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병 안에 거품이 생겼고, 병의 강도가 약해 병째로 폭발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페리뇽 수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꺼운 유리병을 도입했고, 코르크에 철사를 둘러 코르크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합니다. 페리뇽 수사는 이 밖에도 적포도를 이용해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고, 현대적 개념의 '블렌딩'을 도입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페리뇽 수사가 정말 엄청난 역할을 해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네"와 같은 웬지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맞습니다.
4.샴페인 업계의 이해가 반영된 신화
그렇다면 이런 신화가 가미된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샴페인을 만들던 업계의 이해가 강하게 반영돼 있습니다.
샴페인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던 시기는 1800년대입니다. 그 전까지 샹파뉴 지역에서 만들어지던 와인은 드라이 와인, 그것도 레드 와인이었습니다. 그랬던 샹파뉴 지역의 와인이 18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거품이 들어간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샴페인은 최첨단 기술이 적용된 술이었습니다. 6기압을 견디는 병의 채택, 리들링을 통한 효모 제거 등 온갖 신기술이 채택됐습니다. 그런데 이는 바꿔 말하면 샴페인은 1800년대를 기준으로 보면 '전통이 없는' 술이었던 셈입니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샹파뉴 지역의 생산자들은 전통이 없기에 근본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근본없음을 해결하기 위해 유명인사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그 일환으로 이른바 '돔페리뇽 신화'가 만들어지기에 이릅니다.
1821년 오빌레르의 수도원 수사였던 그로사르는 샴페인 업계의 의뢰를 받아 돔페리뇽 스토리를 집대성하기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윤색이 가해졌고, 돔페리뇽이 장님이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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