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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의 보급을 앞당긴 스페인 코르크와 영국 유리

by 쇼리쇼리이쇼리 2021. 11. 3.

어제에 이어 다시 샴페인 이야기입니다. 샴페인은 두 차례의 발효를 통해 병 내에 거품을 가두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와인의 일종입니다. 샴페인이라는 이름처럼 당연히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스파클링 와인만을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샴페인은 대략 1600년대 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보다 앞서 프랑스 리무 지역에서 동일한 방법의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여기서는 일단 샴페인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압력을 버틸 수 없었던 샴페인

거품을 병 속에 넣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병이 얼마나 튼튼한지입니다. 당시엔 본격적으로 손으로 불어 만든 유리병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강도는 형편 없었습니다. 샴페인 속의 기압을 버틸만큼 튼튼하지가 못했던 것입니다. 병의 안쪽이나 바깥에 조그만 흠집만 있어도 이 흠집을 중심으로 균열이 발생했고, 그대로 병이 폭발하곤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당시 셀러 근무자들은 폭발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에 보호용 마스크를 썼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샴페인의 기압은 대략 6기압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느 정도 강도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는데, 자동차 타이어에 넣는 공기압이 대략 2.5기압입니다. 그리고 LPG 가스를 충전할 때 사용하는 충전 기압이 대략 7~8기압 정도입니다. 

 

샴페인의 기압을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있는 증거는 바로 사브라주입니다. 칼로 샴페인의 가장 약한 부위인 병목을 쳐서 샴페인을 여는 방식인데, 보통 유럽 군대에서 의전용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유튜브 등에 찾아보시면 사브라주를 실제로 보여주는 영상도 많으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굳이 칼까지 쓸 필요는 없고, 집에 있는 숟가락으로도 얼마든지 사브라주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간단한 도구 만으로도 사브라주가 가능하다는 건,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병 내의 기압이 강력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17세기 무렵 프랑스에선 나무를 때서 불을 피워 이를 갖고 유리를 만들었습니다.(wood-fired) 반대로 영국에서는 석탄을 때서 불을 피웠고, 이를 갖고 유리를 만들었는데 훨씬 높은 온도에서 만들어진 유리의 강도가 더 높았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런 영국 유리의 강도가 사실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영국 왕립해군 제독인 로버트 만셀은 국왕 제임스 1세에게 간언해 유리제조자들이 나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핵심 전력은 해군력인데, 전함을 만드는데 막대한 양의 나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조달할 수 없었던 유리제조자들은 나무 대신 석탄을 사용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보다 단단한 유리를 만드는데 기여했습니다.

 

또 다른 기여자, 스페인 코르크

스페인산 코르크 역시 샴페인의 보급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아이템입니다. 코르크가 발견되기 전 와인병은 오일에 흠뻑 적신 삼으로 둘러싼 나무 병마개로 밀봉했습니다. 오일에 적신다는 것 자체가 나무 병마개 만으로는 밀봉이 충분치 않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밀봉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무 병마개 자체가 팽창을 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산 코르크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코르크의 특징은 압축성과 팽창성입니다. 일단 밀봉시켜 놓으면 병 안에서 알아서 부풀면서 병의 틈새를 메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봉인에 대한 문제도 해결된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돔 페리뇽 수사가 샴페인 코르크를 최초로 발명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사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to cork or not to cork'의 저자인 조지 타버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 1665년에 베드포드 공작가의 발명품 리스트 중에 샴페인 코르크가 있었다고 합니다. 돔 페리뇽 수사가 실제로 수도원의 양조 책임자가 된 건 이보다 몇년 뒤니, 돔 페리뇽 수사가 샴페인 코르크를 발명했다는 주장과는 맞지 않습니다.

 

참고로 샴페인 병 안에 들어간 코르크는 세월에 걸쳐 모습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약간의 버섯모양을 보이지만, 그 다음에는 보다 본격적인 버섯 모양이 됩니다. 병 내부에서 코르크가 팽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코르크 역시 영구적인 것은 아니여서 종국에는 결국 평평한 쐐기 모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올드 빈티지 샴페인을 오픈해보면 이런 쐐기 모양의 코르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올드 빈티지 샴페인의 기포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도 코르크가 변형되면서 이 사이로 기포가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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