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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가 오래된 와인이 좋은 것인가요?

by 쇼리쇼리이쇼리 2021. 10. 27.

와인 마시는 이쇼리입니다. 오늘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빈티지에 대한 미신같은 생각을 알아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빈티지가 오래된, 즉 오래 묵은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1. 와인을 오래 묵히면 좋다는 엉터리같은 생각

이런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아마도 마케팅이나 미디어 노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선 주인공이 멋진 장면에서 몇십년 된 와인을 꺼내면서 '풍미가 굉장하군' 이런 류의 대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의 물방울 같은 만화책에선 100년도 더 된 샤토 마고가 클레오파트라와 닮았다는 등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묘사가 옳냐 그르냐를 떠나서, 대부분의 사람이 접하는 와인은 오래 묵힐수록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즉 빈티지가 최근일수록 좋은 와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와인의 설계에 있습니다. 모든 와인은 아무 생각없이 만드는 게 아니라 나름의 플랜 아래 양조됩니다. 즉  A라는 와인을 철저하게 대중지향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의도적으로 잔당을 많이 남기고 오크향을 지나칠 정도로 남긴다든지, 탄닌의 수준을 줄이는 등의 방법을 쓰면 됩니다. 만약 양조자가 와인을 초장기숙성형으로 만들고 싶다면 추출의 강도도 더 높일 것이며, 탄닌의 수준도 올리는 등의 방법을 쓸 것입니다.

 

그런데 거의 95% 정도의 와인은 '이지드링킹' 즉 일상소비용 와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와인을 만들 때부터 '장기숙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든 와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와인은 보통 갓 만들어진 시점에서 1~2년 사이가 최고의 시음 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95%의 와인을 만약 5년 이상 묵힌 뒤 마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탄닌은 풀어질 대로 이미 다 풀어졌을 것이며, 과실중심의 향은 전부 날아가버렸을 겁니다. 만약 오크를 쓴 와인이라면 1차향이 하나도 없는 2차향만 어색하게 남아 있는 밸런스가 깨진 와인일 것입니다.

 

생산자가 '바로 드세요' 하고 만든 와인인데, 그걸 5년 이상 놔두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뜻입니다.

 

2. 품종에 따라서도 바로 마셔야할 와인이 있습니다

와인 중에서는 들어간 포도 품종에 따라서 바로 마셔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대표적 화이트 품종인 '알바리뇨'란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오크 숙성을 하지 않으며, 매우 상쾌하고 강렬한 레몬과 자몽의 뉘앙스가 있는 품종입니다. 이런 와인을 만약 5년이 지난 뒤에 마신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이 품종의 최고 장점인 '강렬한 과실풍미'가 전부 사라진 뒤일 겁니다.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에선 '람브루스코'라는 이름의 레드 스파클링 와인이 있습니다. 이런 와인도 2년 안에 소비해야 마땅합니다. 람브루스코 와인은 딸기와 앵두, 베리류의 가벼운 과일향을 개성으로 치는 와인입니다. 역시 5년 뒤에 마신다면 강렬한 붉은 과일 캐릭터는 이미 하늘로 날아간 뒤일 것입니다.

 

미디어의 영향 때문에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을 장기숙성해야한다고 오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부 최상급의 부르고뉴 와인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은 5년 안에 소비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유는 앞과 마찬가지인데, 붉은 과일류의 은은한 향이 매력인 게 바로 부르고뉴 피노인데, 5년을 넘어간다면 이 가장 큰 개성이 사라진 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대부분의 와인은 빈티지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일부 얼간이같은 와인 애호가 중에서는 데일리 와인을 사는 자리에서 빈티지를 따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95%의 와인은 일상소비용 이지드링킹 와인입니다. 빈티지를 따진 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굿빈'을 따져서 그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만 소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95%의 이지드링킹 와인은 굿빈이고 망빈이고 할 게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이 대량생산 방식을 취하는 와인이라서 품질이 대체로 균일한데다 무엇보다 숙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와인이 아니기 때문에 숙성 기대치를 살펴볼 수 있는 빈티지를 따질 이유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데일리 와인을 사는데 빈티지를 따지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손절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와인을 '허세'로 즐기는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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