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넌 빈티지 샴페인의 올바른 명칭은 '멀티 빈티지'(Multi-vintage)

by 쇼리쇼리이쇼리 2021. 11. 9.

와인에 대한 경험이 어느 정도 생긴 분들은 '넌빈' 혹은 '넌 빈티지'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넌빈은 바로 넌 빈티지를 줄인 말입니다. Non-Vintage, 즉 빈티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샴페인은 왜 대부분 넌 빈티지일까

샴페인의 양조 과정을 살펴보면 반드시 중간에 '블렌딩' 과정을 거칩니다. 여러 품종을 섞거나 혹은 여러 빈티지를 섞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샴페인마다의 편차가 극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바꿔 말하면, 어느 해에 만들어진 샴페인을 마셔도 맛의 일관성이 유지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샴페인은 빈티지의 영향보다는 '샴페인 하우스'가 어딘지가 더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샴페인 맛집이 갖는 의미가 생각보다 크다는 거죠.

그런데 여러 빈티지를 섞어 일관성을 유지하는 건 일종의 결과입니다. 일관성을 유지해야한다는 건, 다시 말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샴페인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뜻도 됩니다. 한번 신대륙의 경우를 생각해볼까요. 미국 같은 신대륙의 레드 와인을 살펴보면 굳이 빈티지를 섞지 않아도 얼마든지 한 해의 포도 만으로도 균일한 품질의 와인이 나옵니다. 그러나 샴페인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바로 지형과 기후입니다.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기후는 무척 척박한 편에 속합니다. 일단 위도 자체가 북위 49도 정도인데, 유럽에서 와인 재배가 가능한 북방 한계선이 북위 50도 정도니, 거의 최북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춥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점차 이는 바뀌고 있습니다)

 

반대로 지형은 열려 있습니다. 샹파뉴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캄파냐(campagna)인데, 이건 열린 땅, 열린 지역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샹파뉴 지역의 지형을 살펴보면, 다른 프랑스의 와인 산지와는 달리 굉장히 평평하단 걸 알 수 있습니다. 부르고뉴나 보졸레 등의 지역을 언급할 때는 꼭 '지형'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샹파뉴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냥 오픈되어 있는 땅이라서입니다.

 

사방이 열려있다는 건, 사방에서 그대로 바람을 맞는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심지어 숲도 적은 곳입니다. 사람을 생각해보면 간단한데, 바람이 불면 더울까요 추울까요. 당연히 춥습니다. 진균성 곰팡이의 위협이 적다는 장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포도나무의 온기를 뺏아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서리 피해가 매우 흔합니다. 서리 피해에 따라 심한 경우에는 30% 이상의 작물이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납니다. 생산자들은 이 곳의 포도나무를 서리로부터 지키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뿌려 포도나무가 동사하는 걸 막고는 합니다.

 

심지어 일조량도 적습니다. 샹파뉴 지역의 연 평균 일조량은 단 1650시간입니다. 보르도보다는 대략 400시간 이상 적은 일조량인데, 이 정도의 일조량이면 포도가 '열매를 맻는' 거의 최소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혹독한 지형과 기후 때문에 매년마다 포도농사의 작황이 들쑥날쑥했고, 품질 역시 편차가 컸다고 합니다. 때로는 쑥대밭이 되기까지 하는 자연 환경에 맞서, 사람들은 와인을 세이브해두기 시작했고, 세이브한 와인을 섞어서 각 해마다의 큰 품질의 편차를 극복하려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와인을 안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럼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이렇게 혹독한 지역에서 굳이 와인을 만들 것 없이 다른 곳에서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게 어려운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샹파뉴의 토양입니다. 이 곳은 석회질, 백악질 토양이 주를 이루는 곳입니다. 포도 재배자들은 이 곳의 척박하기 짝이 없는 석회질의 흰 토양이 샴페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산도입니다. 포도가 덜 익는다는 건 일반적으로 와인에 나쁜 요소입니다. 하지만 샴페인은 예외입니다. 스파클링 와인에서는 산도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다뤄집니다. 꼭 샴페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탄산음료 역시 산도가 높습니다. 김빠진 콜라나 사이다를 드셔보시면 너무 신 맛이 난다고 느끼실텐데, 이게 바로 산도가 높아서입니다.

 

그런데 포도에서 산도와 당도는 반비례 관계입니다. 최고 정점에 있던 산도는 시간이 지나 수확기가 가까워질수록 낮아집니다. 반대로 과실이 잘 익으면서 당도는 올라갑니다. 그런데 샹파뉴 지역은 햇빛이 적어서 풀로 익혀봐도 잘 안 익습니다. 산도가 높은 포도라는 뜻입니다. 이걸로 레드 와인을 만든다면 설익은 맛이 나오겠지만, 스파클링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따라서 이 포도가 기가 막히게 '적당히만 익는' 장소를 포기하기 어려운 겁니다.

 

올바른 명칭은 '멀티 빈티지'

다만 넌 빈티지라는 명칭은 가급적 수정이 될 필요는 있습니다. 일단 '넌'이라는 의미가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지닙니다. 넌 빈티지 와인이 빈티지 와인보다 '품질이 떨어진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빈티지 샴페인이 넌 빈티지 샴페인보다 비싼 이유는 '적은 생산량' 이거 하나입니다.  공을 더 들이는 경우가 많다보니 빈티지 샴페인이 품질이 좋을 확률이 조금 더 높은 건 맞지만, 빈티지 샴페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넌 빈티지 샴페인보다 좋은 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상품의 가장 정확한 묘사를 위해서도 멀티 빈티지라는 말이 보다 적합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여러 빈티지의 리저브 베이스 와인을 블렌딩하기 때문에 샴페인의 특징을 보다 정확하게 서술하는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댓글